북한이 한국 쫓다 가랑이 찢어진 사연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미덕 중 하나다. 그러나 북한은 그 미덕을 6·25전쟁 이후 체제와 이념 대결 속에서 평화공세의 수단으로 악용한 적이 있었다.



북한의 대남 선심공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4년 11월 22일 제50차 '군정위(군사정전위원회)'에서였다.


북한은 이날 회의에서 남측의 실업자, 고아 및 고학생 구제를 제의했다. 그러나 유엔군 측은 정치적 성격을 띤 선전공작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군정위는 정전협정에 의해 군사문제에 한정된 사항만 논의하는 기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8년 8월 26일, 제86차 군정위에서 북한은 또 한번 대남지원 제안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계획은 무산됐다.



이러한 선심공세는 북한이 당시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북한의 1인당 GNP는 153달러로 남측의 82달러를 2배 가까이 앞서고 있었다.


이후에도 북한의 선심공세는 지속됐고, 우리 정부는 북한의 선심공세를 매번 무시하는 것밖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1974∼75년 무렵부터 1인당 GNP에서 남한이 북한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얻게 된 외화가 경제개발에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반면 북한은 1962년 4대 군사노선을 천명하고, 1966년부터 경제와 국방의 병진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무리하게 투자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남북 경제는 남측의 우위가 단 한차례도 역전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북한의 대남 선심공세가 처음으로 성사된 사건이 발생했다. 남측이 홍수 피해를 겪자 북한이 지원 물자를 보낸 것이다. 당시 남측은 1984년 8월 31일부터 나흘간 집중호우가 내려 사망 및 실종 189명, 이재민 35만여 명, 피해액 1333억 원 등 큰 피해를 봤다.



이에 대해 북한은 1984년 9월 8일, 쌀 5만 섬,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톤, 의약품 등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이것을 북한이 정치공세로 악용할 것을 우려했지만, 북한의 제의를 수용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위한 평화 분위기 조성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성동마을에서 북한이 지원한 물자를 우리 측 관계자들이 인수하고 있다


그러나 훗날 알려진 바로는 북한은 남측이 자신들의 제의를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른바 '립 서비스'를 날린 것이었는데, 이를 우리가 받아들임으로써 수해물자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전국에서 쌀을 모아 정미소를 가동하고, 밤새 옷감을 만드는 등 큰 소동을 벌인 것이다.



당시 남한과 북한의 GNP는 5.5대1 수준이었다. 결국 북한은 허세를 부리다 정말 가랑이가 찢어질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 경제를 폭삭 주저앉게 한 결정적 사건은 따로 있었다. 1989년 7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그것이다.


서울 올림픽 개최를 보고 올림픽에 버금가는 세계대회를 통해 체제 선전을 하겠다는 계획으로 이 축전을 유치한 북한은 대회를 위해 대규모 경기장, 공연장, 호텔 등을 무리하여 신축했다. 또 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자들에게 체재비 전액과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하며 선심도 베풀었다.



북한은 역대 최대 규모인 179개국 2만 2000명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선전했다.


북한이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쓴 돈은 대부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지원받기로 약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1989년부터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결과적으로 북한은 큰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체제 선전 효과는 거뒀지만 역설적으로 이 대회를 통해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이후 북한의 대남 선심공세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측으로부터 식량과 비료, 의약품 등의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정부·민간·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은 총 3조 2379억 원에 달한다.


*2004년 육로를 통한 대북 쌀지원 모습



현재에 들어 북한의 1인당 GNI가 1,144달러로 남한이 북한보다 1인당 국민 총소득은 20배, 국민 총소득(GNI)은 40배 이상 우위에 있다.



이 수치만 본다면 이제 남북 간 경제 대결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선심공세는 이제 군사적 협박 및 도발로 대체됐다. 경제적 대결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이제 공세 수단은 군사적 위협밖에 안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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