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金)'이 영국에서 보관되는 이유

6·25전쟁 중 가장 무거웠던 피난 보따리의 무게는 얼마일까? 정답은 약 3.6톤이다. 이 보따리는 비단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명운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기도 했다. 바로 전쟁 직전 한국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금·은괴다.



전쟁 발발 3일째인 1950년 6월 27일 아침 9시, 당시 '구용서' 한국은행 총재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금괴 문제는 어떻게 할 거요?"


안 그래도 지하 금고에 쌓인 금·은괴를 옮길 수단이 없어 고민하던 구용서 총재에게 이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방부 장관을 만나보시오."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구용서' 초대 한은 총재


전화를 건 이는 군수물자 이송 통제 업무를 맡고 있던 국방부 3국장 '김일환' 육군 대령이었다.


김일환 육군 대령


이로써 '신성모' 국방부 장관을 만난 구용서 총재는 국방부 트럭을 통해 금·은괴를 진해 해군통제부로 옮기기로 했고, 같은 날 오후 3시, 사상 초유의 '금괴 이송작전'이 시작되었다.


김일환 대령과 헌병의 엄호 아래 나뭇가지를 쌓은 허름한 군용 트럭 2대가 한국은행에 모습을 드러냈고, 곧 한국은행이 보관 중이던 금괴들이 트럭에 실렸다.


6.25전쟁 당시 피격당한 한국은행 건물


이날 김일환 대령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인수한 양은 금 1070㎏, 은 2513㎏. 상자로는 89개에 달했다.



금괴를 싫은 트럭들이 경기도 시흥에 있는 보병학교를 거쳐 대전에 도착한 시간은 이튿날 낮 12시, 이날 서울을 빼앗겼음을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 발생할 수 있었다.


트럭에 실린 금·은은 곧바로 한국은행 대전지부 금고에 보관됐고, 다음 날인 29일 진해 해군통제부 경리 부장인 '김익성' 해군 대령의 인수하에 무사히 진해로 옮겨질 수 있었다.


이후 이 금·은괴는 1950년 8월, 미군 상선에 실려 샌프란시스코로 보내져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맡겨졌고, 전쟁이 끝난 뒤 1955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할 때 지분 출자금으로 사용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은행 본관



한편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바로 한국은행의 금·은괴였다고 한다.


하지만 금고에 남은 것은 김 대령의 이름으로 쓴 보관증과 미처 챙기지 못한 금 260㎏, 은 1만 6000㎏ 뿐이었고, 북한은 "김일환이 금덩어리를 약탈했다."는 허위 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입성하는 북한군


금괴 이송작전에 집중하느라 피난 간 가족의 위치도 알지 못했던 김 대령의 기지와 노고가 없었다면 한국은 전쟁 수행을 위한 자금 충당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 대령은 이후 1954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이승만 정부에서 상공부·내무부·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2001년 별세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괴는 대구지점에서 보관되다가 전란을 겪으며 한국에 금을 보관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 정부가 모든 금을 영국의 '영란은행'으로 옮기기 시작해 2004년 이전을 마쳤다.


영국의 영란은행


금 보관 장소를 영란은행으로 택한 이유는 영국이 금융허브인데다가, 금 선물 시장이 영국에서 가장 활성화된 까닭이다. 실제 영란은행 금고에 쌓여있는 금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 중 약 5분의 1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30여 개국 중앙은행이 영란은행에 금을 맡긴 것이다.


세계 금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은 약 104톤이다. 장부 상으로는 47억 9000만달러. 약 5조 4869억 원에 달한다.



금에 대한 기억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IMF위기 당시 국제적인 이슈가 됐던 '금 모으기 운동'이다.


전국적으로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의 금이 모이는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는 현재 한국은행의 금보유량 보다 2배 넘게 많은 금이 장롱 속에서 나온 것이다.


금 모으기 운동



그 결과 한국경제는 회복세를 나타내며 재도약을 시작했고, 2001년 예정보다 3년이나 빨리 차입금 전액을 조기 상환하면서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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