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개전투를 중시하는 지금도 제식 훈련이 필요한 이유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300'을 보면 페르시아군과 대치한 스파르타군이 서로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밀집한 형태의 대형을 유지한 채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저지하며 창으로 반격을 한다.



'팰렁크스'라 불리는 이 대형은 그리스가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그리스의 팰렁크스 대형을 깨고 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기병과 보병의 유연한 움직임을 강조했지만 밀집대형은 여전히 유지됐다.


*팰렁크스 대형


그리스와 로마군에서 밀집대형은 전투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전투 도중에도 밀집대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제식훈련이 이루어졌다.


이 같은 제식훈련은 기사가 전장의 주역이었던 중세 시대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총기와 화약의 발명으로 15세기부터 전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제식훈련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그 당시 소총은 기존의 활이나 석궁보다 훈련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 전장에서 빠르게 보급됐다. 하지만 유효사거리가 100m에도 미치지 못했고, 분당 1발 꼴로 발사속도도 낮았다.


때문에 병사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적진을 향해 전진하다 일제히 사격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했다. 적군의 포격으로 바로 옆의 병사가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해 사격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병사들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제식훈련은 이를 위한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러한 전술은 18세기 나폴레옹이 포병을 이용한 전술을 중시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후 19세기 소총과 대포 기술의 발달로 발사속도와 정확성이 높아지면서 제식의 필요성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식훈련의 전술적 효용성에 결정타를 안긴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개전 당시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전투에 나선 젊은 병사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적진으로 전진했다. 이들을 향해 맥심 기관총이 불을 뿜자 총탄을 피할 곳이 없던 병사들은 수숫단처럼 쓰러졌다.



이런 식으로 대규모 전투에서 수십만 명이 사망하자 은폐와 각개전투 위주의 전술훈련이 각광받았고, 제식훈련은 군대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성격이 바뀐다.


맥심 기관총


이처럼 제식훈련이 현대전에서 전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진 지금에도 군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군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은 20여 년을 자유롭게 살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성격도 행동도 각양각색인 젊은이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군인으로 키워내려면 군인으로서의 의식을 주입해야 한다.



제식훈련을 통해 대형을 갖추는 방법을 배운 병사들은 신병교육기간 동안 연병장에서 훈련할 때도, 밥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할 때도, 일요일에 종교활동을 하러 갈 때도 제식훈련에서 배운 것처럼 대형을 갖춰 움직인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아, 내가 정말로 군인이 됐구나"하는 인식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또 작전 수행 과정에서 지휘관이 비합리적인 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적군에 의해 포위되기 직전인데도 지휘관은 본대의 후퇴를 위해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성적으로 볼 때는 후퇴해야 목숨을 건지지만 군인의 시각으로는 진지를 지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개인적인 생존본능을 억누르고 임무를 수행하려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를 평상시부터 습관화해야 하며, 이는 엄정한 군 기강이 존재할 때 유지된다. 제식훈련은 군 기강을 유지하는 밑거름을 제공한다.



조교들이 상관에게 경례하는 방법이나 예의를 갖추는 방식 등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병사들은 지휘관의 권위와 명령에 자연스레 복종하게 된다. 지휘관은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강을 확립하고 부대의 일체화를 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최첨단 무기가 주를 이루는 21세기에도 구시대의 유물 '제식훈련'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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