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에 포위된 부대가 초콜릿 투하를 요청한 이유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중 가장 참혹했던 싸움으로 꼽힌다. 동시에 미국 해병대 창설 이후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억된다. 이러한 장진호 전투에서 있었던 일화 중 하나이다.



"지금 초콜릿 사탕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초콜릿 사탕이 없다. 긴급하게 초콜릿 사탕을 지원해주기 바란다." 중공군에 포위된 채 악전고투하던 미 해병대 제1사단 박격포 부대의 통신병이 다급하게 무전을 쳤다.



후방 지원부대의 통신병은 어리둥절해졌다. 적군에 포위된 부대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보급을 요구하는 것이 겨우 초콜릿 사탕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전선에서 초콜릿 사탕을 보내달라고 다급하게 요청했으니 통신병은 일선 부대의 요구 사항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후 공군 수송기들이 수백 상자의 초콜릿 사탕을 싣고 이륙, 장진호 주변을 에워싼 중공군의 대공 사격을 피해 낙하산으로 사탕을 투하했다.



목을 길게 빼고 보급품을 기다리던 박격포 부대원들이 허겁지겁 달려나가 보급품 상자를 수거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멍청한 것들이 초콜릿 사탕을 보내 달랬다고 진짜 사탕을 투하하면 어쩌자는 거야?"


보내 달라는 대로 초콜릿 사탕을 잔뜩 보내주었음에도 해병대원들은 투덜거렸다. 이유가 무엇일까?



박격포 부대 통신병이 요청한 것은 분명히 초콜릿 사탕이었다. 그것도 분명하게 '투시 롤(Toosie Roll)'이라는 특정 상표의 초콜릿 사탕을 요구했다.


하지만 투시 롤은 사실 박격포 포탄을 일컫는 해병대원들의 속어였다. 부대에 필요한 것은 진짜 초콜릿 사탕이 아니라 60mm 박격포 포탄이었던 것이다.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도청당할 것을 염려해 적이 알아들을 수 없는 해병대 속어를 써서 박격포 포탄이 떨어졌으니 긴급 공수를 바란다고 무전을 친 것인데 진짜 초콜릿 사탕 수백 상자를 투하한 것이다. 이는 후방의 통신병이 투시 롤이 박격포탄의 암호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고, 탄약이 떨어진 부대에 사탕만 잔뜩 보냈으니 대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제1사단 해병대원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부족한 탄약 대신 보급받은 초콜릿 사탕이 박격포탄보다 훨씬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미 해병대 제1사단과 미 육군 연대가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병력의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해발 2000m의 산들이 이어지는 고지대에서 40㎞의 협곡지대를 돌파하여 후퇴에 성공한 것인데 한편으로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너무나 추워서 기관총이 얼기 때문에 불발을 예방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적이 있건 없건 주기적으로 사격했고, 부상자를 치료할 수액과 모르핀이 얼어 사용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전투식량도 얼어 있는 상태로 먹어야 했는데 유일하게 녹여서 제대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박격포탄 대신 공중에서 무더기로 투하된 초콜릿 사탕이었다.



해병대원들은 몇 날 며칠을 꽁꽁 얼어붙은 전투식량 대신 초콜릿 사탕으로 버티며 적의 포위망을 뚫었다. 그래서 훗날 이 초콜릿 사탕은 해병대를 구한 사탕으로 불렸다.


초콜릿 사탕의 역할은 비상 전투식량에 그치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꽁꽁 얼어버리는 추운 날씨였기에 초콜릿 사탕이 의외의 역할을 했다. 연료통 마개로 쓰인 것이다.



적의 공격을 받아 연료통에 구멍이 나면 입안에서 초콜릿 사탕을 녹여 그 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러면 곧바로 얼어붙어 용접한 것 못지않았다.


미군이 초콜릿 사탕 투시 롤을 병사들 모두에게 전투식량으로 지급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캐러멜 비슷한 사탕에 초콜릿을 입힌 이것을 선택한 이유는 비상시 에너지원이 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기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막의 더운 날씨에도 녹지 않고, 꽁꽁 얼어붙는 추운 날씨에도 입에 넣으면 쉽게 녹여 먹을 수 있는 투시 롤은 장진호 전투에서 전투 사탕으로서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미 해병대 제1사단을 구한 사탕이었기에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모임에는 지금도 사탕 제조회사에서 초콜릿 사탕 투시 롤을 한 아름씩 제공한다.


투시롤과 함께 상패를 수여받는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지금도 미 해병대 전쟁 박물관에는 투시롤을 까먹으며 걷는 미군상이 전시되어있다.



장진호의 초콜릿 사탕은 어떻게 생각하면 어이없는 에피소드다. 비록 웃지 못할 오해로 발생했던 실수였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한 실수에도 죽음을 각오하며 적과 추위에 맞섰던 그때의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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