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선원 구출을 위한 청해 부대의 포함외교 전술

지난 3월 26일한국 선사가 운영하는 500t 규모의 참치잡이 어선인 '마린 711호'가 아프리카 가나 해역 인근에서 나이지리아 해적으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어선에는 가나 국적 선원 40여 명과 선장, 항해사 등 한국인 3명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4월 29일, 마린 711호 3명의 선원들이 피랍 32일 만에 아무런 부상 없이, 조건 없이 풀려났다.


*피랍됐다 풀려난 마린 711호 3명의 선원들


여기에는 우리 청해 부대 '문무대왕함'의 알려지지 않은 작전이 있었다.


*문무대왕함


마린 711호 피랍 당시 나이지리아 해적 소굴 앞에 진을 치고 해적들을 압박했던 청해 부대의 '문무대왕함'은 해적을 상대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막강한 군함이었다. 1분에 20발의 포탄을 날릴 수 있는 고성능 함포, 수백 km 밖의 표적 건물 창문까지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정밀 유도탄을 갖춘 구축함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몇 분 안에 해적 본거지 자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법을 준수하는 한국 해군이 주권국인 나이지리아 영토 내에 있는 해적 본거지를 직접 포격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적선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적들이 무장한 채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면 청해 부대는 적법절차에 따라 이들을 공격해 격침시킬 수 있다. 바다에는 청해 부대가, 내륙으로 가는 길에는 악명 높은 '보코하람(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정부군'이 버티고 있으니 인질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한 해적들은 본거지에 갇혀 나올 수가 없었다.


*보코하람


해적들은 결국 인질 석방을 택했고, 인질 신병 인도와 함께 해적들에 대한 봉쇄도 풀렸다. 적의 눈앞에 군함을 들이밀고 압박을 가해 요구 사항을 쟁취하는 18~19세기 스타일의 '포함외교'가 먹힌 것이다.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압박 외교전술의 형태다. 수백 문의 함포를 장착한 거대한 전함을 적의 바닷가에 띄워놓고 요구 사항을 제시하며 협박하는 것이다.



일본을 개항시켰던 '쿠로후네' 사건이나 조선시대 있었던 '신미양요'가 바로 이러한 포함외교의 사례였으며, 현대에는 미국이 항공모함을 이용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사례들이 바로 이런 포함외교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신미양요


이런 유형의 포함외교는 주로 주권국과 주권국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이번 청해 부대의 사례처럼 현대에 들어와 해적을 상대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포함외교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프랑스와 러시아다.

해적 사건이 발생하면 그 어떤 협상도 없이 군사력을 동원해 구출작전으로 사태를 해결해온 프랑스는 지난 2009년 4월, 자국인 여행객들이 탑승한 요트가 납치되자 구출작전을 감행하는 한편, 요트 피랍을 자행한 배후 세력을 파헤쳐 해당 해적 조직의 근거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곳에 구축함을 파견해 근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해적 모선 4척과 고속보트 6척을 격침시킨 뒤 살아남은 생존자 35명을 생포해 본국으로 압송했다.



프랑스 선박을 건드리면 본거지가 박살 난다는 소문은 해적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고, 이후 프랑스 국기를 게양한 선박을 건드리는 해적은 없었다.


러시아는 프랑스보다 더 강경했다.

러시아는 지난 2008년, 자국 선원이 일부 탑승한 우크라이나 선적 화물선이 피랍되자 해적 근거지를 향해 수백 발의 미사일을 탑재한 초대형 핵추진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함'을 출동시켜 대응하는가 하면, 얼마 뒤 러시아 선적 유조선이 피랍되자 중무장한 구축함 '마샬 샤포시니코프함'을 보내 화력으로 해적을 제압하고 선원들을 구출했다.



체포된 해적들은 모든 물품을 압수하고 맨몸으로 소형 보트에 태운 뒤 해안에서 560km 떨어진 망망대해, 그것도 식인상어 서식지에 방면하고, 그들의 '모선'은 함포 사격훈련용 표적함으로 벌집을 만들어 버린 사례가 있었다.


이 사건 뒤로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국기를 단 선박이 납치되는 일은 재발하지 않았다. 러시아 선박이나 선원을 납치할 경우 협상이나 보상금은 없다는 것을 해적들이 확실히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인도양과 아덴만 일대에 대규모 연합함대를 꾸려 상시 순찰을 돌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최근 1~2년간 이 해역의 해적은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급속히 위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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