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시장의 큰손 사우디가 글로벌 호갱으로 전락한 사연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국이자 풍부한 오일 머니로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의 무기를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한 중동의 부국이다. 특히 왕족들 가운데 소위 말하는 '군사 마니아'가 많아 좋다는 무기는 국적 불문하고 도입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사우디는 국제 무기시장에서 '글로벌 호갱'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투기를 파려는 업체들은 가급적 마진을 줄이고 최대한 낮은 가격을 써 내야 한다. 경쟁 입찰을 거친 무기 도입 방식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반화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 왕정 국가이다. 국왕이 군 최고통수권자이며, 국방장관, 각 군의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는 모두 왕족이 독식한다. 국왕이나 왕족이 어떤 무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했으면 그것으로 의사결정과정은 끝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무기를 도입할 때는 거의 매번 왕실과의 거액의 리베이트 이야기가 오고 갔고, 그들이 도입하는 무기의 가격은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동일 무기 구입 가격보다 언제나 비쌌다. 하지만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군의 무기 도입 사업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다.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무기도입 사업은 언제나 왕실이 개입했고, 전제 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히 왕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이러한 대규모 무기도입 사업은 재무부를 통해 집행되는 정식 예산이 아니라 석유 판매 대금으로 조성되는 특별 회계 예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회계 감사가 없어 얼마나 많은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별 회계 예산을 통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챙긴 인물이 있었다. 20년 넘게 주미대사를 지내며 '아랍의 키신저'라 불렸던 '반다르 빈 술탄' 왕자였다.



반다르 왕자는 1985년 당시 영국 최대의 무기업체인 'BAE'와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 계약을 성사시켰다. 당시로서는 최신형이었던 '토네이도 전투기' 72대와 '호크 훈련기' 30대 등 항공기 100여 대를 무려 '430억 파운드(약 70조 원)'에 구매하는 사업이었다.



*토네이도 전투기


호크 훈련기


반다르 왕자는 이 사업을 중개해주는 대가로 BAE로부터 천문학적인 리베이트를 받았다. BAE는 3개월에 한 번씩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관 명의로 된 2개의 계좌에 3,000만 파운드를 송금했고, 이러한 분할 송금은 약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렇게 BAE가 반다르 왕자에게 총 지급한 리베이트는 약 10억 파운드, 우리 돈 약 1조 7,000억 원 규모였다.


리베이트가 송금된 계좌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관 명의였지만 반다르 왕자는 이 계좌를 개인 개좌로 이용했고, 리베이트로 받은 돈 일부로 에어버스 A340 전용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영국의 '중대비리조사청'이 관련 의혹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2004년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중대비리조사청은 약 2년여간의 조사에서 BAE와 반다르 왕자 사이의 검은 거래에 대한 증거를 대량으로 확보하고, 추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반다르 왕자와 사우디 왕실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편 영국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즉각 영국정부에 항의하면서 "수사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현재 협상 중인 유로파이터 전투기 구매 협상을 취소하고 프랑스 전투기를 구매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결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2006년 12월, 법무장관을 불러 수사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고, 수사팀은 해체됐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중단시킨 정부의 결정에 격분한 검사와 수사관들이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들을 런던의 한 식당 앞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이 사실을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지에 제보한 것이었다.


BAE와 반다르 왕자의 지저분한 거래는 대서특필되었고, 사우디 왕실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혀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샀다.



이후 사우디 왕실은 무기 도입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번 거래에서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