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자동차에 관한 의외의 사실들

교통수단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 한 자동차... 오늘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자동차에 관한 뜻밖의 사실들을 소개합니다.



   최초의 운전자는 여성이다?



1885년, 바퀴가 3개 달린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든 '칼 벤츠(Karl Benz)'

당시 사람들에게 그의 자동차는 신기한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 부인 '버사 벤츠(Bertha Benz)'는 1888년 8월 어느 날 새벽, 아들 둘을 데리고, 칼 벤츠가 제작한 자동차를 이용해 100km가 넘는 자신의 어머니 집으로 출발했다. 장장 1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돌아올 때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고 하는데, 최초의 장거리 운행 기록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동차를 실생활에서도 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고, 이후 벤츠의 판매량도 급증했다.



   세계 최초로 PPL(간접광고)을 한 자동차는?



처음으로 PPL을 한 브랜드는 바로 '볼보'이다.

1961년 영국 드라마 '세인트(Saint)'에 볼보 광고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광고 모델은 'P1800'으로 시대를 앞서간 느낌마저 든다.



드라마 '세인트'에서 P1800을 운전한 배우는 바로 원조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이다. 그래서인지 이 차는 로저 무어의 애마로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 첫 국산차의 이름은 '시발'이다.



'욕'이 아니다.

자동차 '시발(始發)'은 1955년 8월부터 1963년 5월까지 우리나라의 '국제차량제작 주식회사'에서 실제로 판매했던 자동차의 이름이다.



물자가 부족해 드럼통을 펴서 만들었는데, 무려 4기통짜리 6인승 지프 모델이었다. 정확한 상표 표기는 'ㅅㅣ-ㅂㅏㄹ'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 생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아우디는 한때 브랜드가 사라졌던 적이 있다?



아우디의 로고인 4개의 원에 힌트가 있다. 

지금의 아우디는 1932년, 독일 작센 지방의 4개의 자동차 회사인 반데러(Wandere), 데카베(DKW), 호르히(Horch), 아우디(Audi)가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회사명은 아우토 유니언(Auto Union AG)



1937년 당시 독일 내에 운행 중이던 이 회사의 차량이 54,765대였는데 아우디는 이 중 1%도 못되었다고 한다. 1949년~ 1965년에는 아예 아우디 브랜드로는 생산조차 하지 못했다.



   볼보는 스웨덴 차다?



1927년,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짓고, 스웨덴의 첫 번째 모델 '야곱'을 만든 볼보...

1940년대 강화유리를 적용한 볼보의 소형차 'PV444'는 스웨덴의 국민차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99년, 볼보 그룹은 승용차 부문을 매각했다.



사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보았을 때 볼보의 시장 점유율은 23위에 불과했다. 대신 트럭 및 중장비 부문을 확장하여 이 부문의 선두로 올라선다.



승용차 부문은 미국의 포드사에 인수되었다가 2010년 들어 중국 10대 자동차 제조 업체인 '지리(Geely)'그룹에 매각된다. 중국 그룹에 매각되긴 했지만 볼보는 여전히 스웨덴에서 제조되고 있다.



   람보르기니 알고 보면 화나서 만든 차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트럭터 사업으로 축적한 부로 람보르기니를 만들었다.

스포츠카를 좋아했던 그는 자신이 타던 페라리의 결함이 있다는 걸 알게됐고, 이를 알리기 위해 페라리의 사장인 '엔초 페라리'를 만나려 했으나 거절당한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페루치오가 자신을 무시한 데 자극을 받아 스포츠카 사업을 시작했다



엔진 디자이너를 페라리에서 영입해 엔진을 개발했고, 이듬해인 1963년부터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미우라(Miura)'로 정상에 올라선다.



   폭스바겐을 만든 건 히틀러다?



폭스바겐은 '국민의 자동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30년대까지 자가용은 사치품이었다. 독일의 공장들도 부유층을 위한 자동차만 생산했는데, 당시 히틀러는 일반 국민도 살 수 있는 보급용 차를 원했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다임러 벤츠사의 수석 엔지니어 출신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게 자동차 제작을 의뢰했고, 그는 1938년에 히틀러가 의뢰한 자동차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1939년 들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면서 생산은 중단된다. 정작 제대로 양산이 된 건 종전 후인 1946년, 이 차가 바로 전 세계적으로 2,100만 대가 팔린 바로 그 '비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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