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광복 1호 귀국선 '우키시마'호

1945년 8월 24일, 일본 해상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조선인들이 수장됐다. 추정 침몰 사망자 수는 5000명~10000명...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타이타닉 침몰, 그곳에서 1,513명이 사망하였다.


침몰 원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의 폭발이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우키시마 침몰 사건' 또는 '우키시마 호 폭침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대한민국은 독립을 맞이하고, 1945년 8월 19일, 일본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일본의 하코다데 항에 정박 중이던 '우키시마 호'에 승선한다.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들을 모두 고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던 일본.

"너희들의 고향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모두 이 배에 타야만 한다. 돌아가는 배는 이 배 한 척뿐이다."



고향에서 강제로 끌려왔던 사람들은 환호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배에 올랐다. 그렇게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던 배에 몸을 구기며 올라탔던 조선인들... 이들을 태운 '우키시마 호'는 수많은 사람들의 설렘을 안고 부산으로 출항 한다.


그런데... 출항 후 오후가 됬을 때 우키시마 호의 '사토야마' 함장을 비롯한 일본의 승무원들 200여 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배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10분 후, 굉음의 폭발과 함께 배가 하늘로 치솟았다. 곧이어 우키시마 호는 두 쪽으로 갈라졌고, 서서히 바다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침몰한 곳은 교토를 조금 못 온 '마이츠루'라는 도시 근처였다. 인근 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어부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출했다. 그렇게 큰 배가 폭발 사고를 당했는데도 인근 해군기지에서 구조선이 오지 않았고, 근처 어부들 외엔 아무런 구조 활동이 없었다.



사건 발생 1주일 뒤, 일본의 해군사령부는 공식발표를 통해 이번 사고로 조선인 524명과 일본인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밝혀진 승선자 수는 최소 7천~1만 2천 명 이었다.


이어지는 일본의 발표. "침몰 원인은 미국이 설치했던 해상지뢰(기뢰)였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짓된 발표라는 것이 당시 승무원이었던 일본 장교의 증언으로 밝혀진다.

"해당 항로는 이미 소해(기뢰를 제거하여 안전 항로를 설정하는 군작전 행위) 완료를 확인 받은 항로였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는데 바로 군사시설에서 주로 일했던 노동자들을 겨냥한 계획적인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내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조선인들의 입과 귀를 막고자 그들이 타고 있던 배를 계획적으로 침몰시켰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몇 가지 근거가 제기되었는데

  1. '연료 불충분' 출항 때부터 이미 부산까지 가기에는 연료가 불충분했다는 승무원의 증언, 애초에 부산까지 갈 계획이 없었다?

  2.  '일본인 승무원들의 사전 탈출' 배가 침몰하기 전 200여 명의 일본인들이 배를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생존자의 증언. 그들이 떠나고 곧 배는 침몰했다.

  3.  '의문의 바위' 배가 침몰되고 시작됐던 인양 작업 중 내부에서 무게 300톤급의 바위가 발견되고, 인양된 배는 어떤 조사도 없이 해체되어 고철로 팔려 나간다.


게다가 침몰에서 극적으로 생존했던 조선인들이 묵었던 임시 숙소에서 발생한 의문의 증기 폭발 사고 그로 인한 인명 피해까지, 그날의 많은 기억들이 이 사건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1992년, 희생자와 유족들이 일본 법원에 배상청구 소송을 제소하였다.


2001년 8월 23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는 일본 정부의 안전 배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생존자 15명에게 1인당 300만 엔의 위로금 지급 판결을 내렸으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요청은 기각했다. 그러나 이 판결마저 2003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번복되어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우키시마호 운항은 국가의 치안상 이유로 이뤄진 행정상의 조치이기 때문에 안전 운송 의무가 없었다. 당시 법질서에 따라 일본은 배상 및 사죄의 의무가 없다."

- 2003. 05. 30. 日고등법원



수천의 사람들이 수장됐지만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아직도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깊은 바다로 잠겨가며 조국의 산하를 눈에 담았을 슬픈 영혼들의 한은 언제나 풀릴 수 있을지. 아직도 그치지 못한 그들의 눈물이 바다를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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