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입되어 아시아 상공을 지배한 전투기
- 밀리터리
- 2018. 8. 3. 07:00
1965년, 북한의 '미그기'가 백령도 상공에서 무력시위를 펼쳤다.
당시 우리 공군은 한국전쟁 당시 운용했던 F-86, F-5 A/B라는 구식 전투기가 전부였고, 이러한 전력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북한의 미그기에 대항할 수 있는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 'F-4 팬텀' 도입이 절실했고, 우리군은 미국에 군사원조를 요청했다.
*1958년 처음 시험 비행에 성공한 F-4는 196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미 공군과 해군, 해병대에서 모두 사용된 공중전의 최강자였다.
'F-4 팬텀' 전투기는 최대 3시간 이상 비행이 가능했고, 먼 거리의 적기를 포착할 수 있는 레이더, 적외선 전방 탐지장비, 고성능 폭탄 투하장비와 AIM-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지상 공격용 폭탄을 갖춰 공중전과 지상 폭격을 함께 수행했다. 전투기가 갖추어야 할 우수한 전투력과 기동성 등 모든 요소를 충족했던 전투기였다.
그러나 F-4 팬텀은 미국도 실전 배치한 지 3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고, 특히 최우방국이었던 일본, 이스라엘, 영국에 조차 판매하지 않았던 수출 금지 품목이었다.
이러한 전투기를 무료로 지원 해달라는 요구였고, 이에 미국은 한국의 공군은 팬텀을 조종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군사원조를 거부했다. 이후에도 우리의 군사원조 요청은 계속됐고, 미국은 F-4 팬텀은 원조할 수 없다는 입장만 번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68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 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는 1·21사태가 발생했다.(일명 김신조 사건) 그리고 이틀 뒤인 1월 23일에는 미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미국은 한국의 안보 위기감을 감안해 결국 우리 정부의 F-4D 지원 요청을 받아들였다.
현재 상황을 기준으로 해석하면 우리 공군에 최첨단 전투기인 'F-22 랩터(Raptor)'가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69년 F-4D 18대를 도입해 팬텀 시대를 열었고, 우리 공군은 미국, 영국, 이란에 이어 세계 4번째 'F-4 팬텀' 운용국이 된다.
중국 북한 소련이 Mig-17/19/21 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성능상 승부가 되지 않았고, 특히 북한과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후 일본은 우리보다 5년 후에 F-4 팬텀을 도입했다.)
그리고 1969년 7월, F-4 팬텀을 운용하기 위한 공군 제151 전투 비행대대가 대구에 창설됐고, 1969년 8월 29일에는 우리 공군의 숙원이었던 F-4D 팬텀 6대가 대구 공군기지로 들어온다.
*대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팬텀 인수식
*최초 도입 시 편대를 지휘했던 강신구 중령에게 부인이 환영 꽃다발을 걸어주고 있다. 그 옆의 인물은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 강신영)이다. 강신구 중령은 신성일의 친형이었다.
한반도 공중작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기대됐던 F-4 팬텀(Phantom)의 도입과 함께 북한은 자기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백령도 상공 무력시위를 중단했다.
*F-4 팬텀은 41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방어했고, 2010년 6월 16일 명예롭게 퇴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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