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하는 군인에게 '제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

신병이 훈련소에 입소한 후 제일 먼저 받는 훈련이 있다. 바로 '제식'이다.



단체 규율을 중요시하는 군대 문화 특성상 이것은 기본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오를 갖추어 절도 있게 발맞춰 행진하는 모습이야말로 군기가 가득 찬 군인들의 표상이다.



부대가 발을 맞추지 않고 걷는 어수선한 모습은 군기라고는 실종된 패잔병의 후퇴 모습, 포로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모습 또는 훈련소에 오랜만에 입소한 예비군들의 집합 모습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교범에 있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대가 행진할 때 다리 위에서는 절대로 발을 맞추어 걸어가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특히 교량 중에서도 '현수교(Suspension Bridge)'를 통과할 때는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것이 금기시되는데, 그렇게 된 데는 그 만한 사유가 있다.


*현수교 : 교상이 하중을 견디는 케이블에 매달려 있는 다리


상판이 긴 현수교가 바람 같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다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진동 때문이다.


다리에 전해지는 외부의 압력이 고유의 진동과 함께 분산 상쇄되어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극히 드물지만 다리 고유의 진동과 같은 사이클의 진동이 외부에서 더 해질 경우 다리를 더욱 요동치게 만들 수 있고 결국 다리는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40년 11월 7일,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시에 있던 '타코마 대교' 붕괴사고가 있었다.


타코마 대교



완공된지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최신 다리가 측면 바람에 진동을 타면서 요동치는 폭이 더욱 커지다가 붕괴되었는데 다행히도 사전에 다리를 통제하여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오래전인 1831년에도 이런 무서운 붕괴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동반한 사고였다.


영국 맨체스터시 인근에 설치된 '브로튼(Broughton)' 현수교위를 500여 병력으로 구성된 영국군 1개 대대가 발을 맞추어 행진하였는데, 이때 병사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진폭이 다리의 진동 폭과 동일하게 되면서 다리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결국 증폭된 흔들림으로 인하여 다리가 순식간에 붕괴되면서 200여 명이 사망하는 대 참사가 발생하였고, 그 이후부터 부대의 행진 시 다리 위에서 절대로 발을 맞추지 말라는 지침이 하달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증거다. 세상에는 안전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그것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사고 이후 재건된 브로튼 다리



혹시 행진 또는 행군하는 부대를 보았을 때 다리 위에서 발을 맞추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행진하더라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씩씩한 행군의 모습이 군대의 표상이라는 막연한 관념을 어떤 때는 버려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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