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공간속 전장에서 입증된 수직 이착륙기의 성능
- 밀리터리
- 2018. 9. 2. 06:00
영국 해군은 경제적인 이유로 퇴역시킨 중형 항공모함 대신에 경항공모함 체계를 갖추기로 하고, 1975년 공군이 사용 중이던 '해리어(Harrier)'를 개조해서 경항모에 탑재하기로 했다.
이전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전투력의 감소가 예상되므로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그렇게 '해리어'는 배 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을 공군형과 분리하여 '씨 해리어(Sea Harrier)'라 명명 했는데, 「방공·제공·대함공격·정찰」 등의 다용도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 많은 세부 개량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량으로 인해 해리어는 수직 이착륙 기능을 갖추게 되었고, 경항모에서 운용되는데 최적화된 항공기로 재 탄생했다. 그러나 실전에 투입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력은 그때까지 미지수였다.
공군의 경우는 어차피 해리어가 주력 전투기 개념은 아니었지만 해군형은 이전에 주력으로 사용하던 'F-4 팬텀' 전투기나 '버캐니어' 공격기에 비한다면 객관적인 능력이 뒤처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둘의 임무를 모두 담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이렇게나마 항공모함 전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감지덕지해야 했다.
그런데 해리어가 단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직이착륙 능력만을 보여주는 에어쇼 용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지리적으로 바로 앞이지만 영국이 점유하고 있던 '포클랜드 제도'를 무력 점령하였다. 남 대서양을 배경으로 영국과 아르헨티나 벌인 유명한 '포클랜드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차피 전면전은 아니었고, 섬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지전이었지만 당시 전황은 영국에게 상당히 불리했다.
전쟁터가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바로 자기 집 앞마당이었던데 반하여, 영국은 모든 것을 배에다 때려 넣고 장장 지구 반 바퀴인 13,000km를 달려가 바다 위에서만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2차 대전 이후 영국은 지상군까지 투입해야 하는 이 정도의 장거리 대규모 단독 원정을 실시한 전례가 없었다.
더구나 영국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항공 전력은 28기의 '씨 해리어'가 전부여서 10여기의 공군 해리어 'GR.3'까지 긴급 충원되어야 했다. 하지만 영국군은 「Mirage III, Dagger, A-4」등 90 여기의 고정익 전투기를 투입한 홈코트의 아르헨티나군을 몰아붙여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Mirage III
당시 아르헨티나는 35기의 전투기 손실을 입었지만 영국의 해리어는 10기의 손실만 입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항공 전력이 항속 거리의 제한 때문에 실제로는 홈코트의 이점을 누리지 못했고, 또한 공대공 전투보다는 영국의 함정 격침이 우선 목표였기 때문에 방어에 나선 해리어가 유리한 전장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전쟁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해리어의 효용성이 이 전쟁을 통해 만천하에 알려졌다.
영국 해군은 씨 해리어와 이를 탑재하는 경항공모함을 내키지 않아 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운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전략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되었다.
이런 결과는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태국 등에서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을 도입하도록 촉진시켜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러한 무기사의 극적인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당연히 영국의 해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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