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 전력 없이 항모를 운용한 아르헨티나의 최후

1982년 4월 2일, 영국이 실효 지배 중이던 남 대서양의 '포클랜드 제도'를 아르헨티나가 전격 침공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두 나라 모두 같은 진영에 속했기에 아르헨티나의 예상치 못한 도발은 주변국, 특히 미국을 당황케 만들었다. 이후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위한 다각적 시도를 벌였으나 결국 전쟁으로까지 비화했다. 바로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영국은 이 전쟁을 위해 원정군을 꾸려 아르헨티나 인근까지 다가가야 했다.


*영국은 아르헨티나 본토에서 가까운 포클랜드 제도까지 13,000킬로미터를 달려가야 했다.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했지만 많이 축소된 영국 해군은 2척의 경항공모함을 주축으로 상선까지 징발한 대규모 함대를 꾸려 원정군을 태우고 4월 중순, 목적지인 포클랜드 제도로 출항했다. 그러자 많은 군사 전문가들의 시선은 제2차 대전 후 처음으로 벌어질 항공모함 함대 간의 대결에 집중되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도 항공모함 '베인티싱코 데 마요'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인티싱코 데 마요


그런데 막상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엑조세'를 장착한 함재기 '슈페 에탕다르'는 항공모함이 아닌 지상에서 출격을 했다.


슈페 에탕다르


전쟁 내내 항공모함 마요는 지구 반바퀴를 달려온 영국에 아르헨티나가 굴욕적으로 항복하는 그 순간까지 어떠한 활동도 하지 못하고 꼭꼭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이들이 주목했던 제2차 대전 후 최초의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은 끝내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전쟁터는 아르헨티나 인근이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제공권 확보에서 영국이 절대 우세했다.


기습 점령한 포클랜드에 있던 활주로는 너무 작아서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은 본토에서 출격해야 했는데, 가장 가까웠던 곳도 800여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전투 공역에서 작전을 펼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반면 영국은 가까이 배치된 항공모함에서 출격해 손쉽게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당연히 이 때문에라도 마요가 필요했지만 정작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항공모함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마요의 성능이 당시 영국이 동원한 '허미스' '인빈시블'에 결코 뒤지지 않았고, 탑재한 함재기는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요가 항구에 꼭꼭 숨는 한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전쟁 초반인 1982년 5월 2일,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수상함인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가 영국 잠수함 '콩커러'가 발사한 어뢰에 격침당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항공모함을 보호할 호위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침몰하는 헤네랄 벨그라노


이를 기점으로 아르헨티나 해군은 함대 간 대결을 포기해 버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마요가 호위를 받지 않고 전투 공역까지 이동해 작전을 펼칠 방법은 없었다.



어찌 됐는 이 국지전의 승자는 지구 반바퀴를 달려온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전쟁 기간 내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마요는 1990년 이후 가동 불능 상태로 보존되다 1997년 퇴역한 뒤 2000년 인도에 팔려 고철로 해체되었다.



물론 전쟁 당시 출동했다면 비참한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컸겠지만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숨어서 목숨을 보존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마요는 호위 전력의 구축 없이 항공모함만 운용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알려준 생생한 교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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